미안함
2021.05.03 08:01
안기선
“피라미드, 만리장성, 경복궁,
나아가 현대의 마천루는 문명의 상징 일까요,
아니면 야만의 상징일까요?
거대한 건물들은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유산들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야만의 상징일 수밖에 없습니다(중략).
인류가 자랑하는 모든 화려한 문물에는
억압과 지배라는 동물적 야만성이 숨어 있습니다.
누가 피라미드와 경복궁의 돌을 옮겨 쌓았을지 상상해보세요.”
강신주 저(著)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동녘,16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계 문화 유산이라며 자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문명의 상징이기도 하고 야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리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외모, 재능, 실력, 경제적 능력, 네트워크…
그런데 돌아보면 나의 유산은 남의 피해를 딛고 일어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자가 아닌데도 살아남은 것이라면 비겁함과 속임수로 살아 남은 것일 수도 있고,
정말 강자여서 살아남은 것이라면,
더 약한 누 군가를 밟고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 남은 자는 슬픔과 미안함이 늘 있습니다.
살아 남은 자의 미안함, 돌보지 못한 부채 의식.
나의 나 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이웃의 도움도 큽니다.
이웃에게 늘 미안해하는 마음이 겸손입니다.
이런 ‘미안함’과 가장 비슷한 성경 구절이 ‘빚진 자’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 (롬1:14)